J FORUM

2018seoul, korea

Forum series of Junglim foundation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산보를 좋아한다.
걷는 것을 통해서 마을을 느낀다.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건축을 시작한다. 책상 위에 모형을 두고 위에서 보는 것처럼 도시의 전체를 한 눈에 바라보는 시점이 아닌, 그 안에서 걸으면서 마을을 알아가는 시점에서 부터 건축을 생각한다. 
오래된 마을들을 걷다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손때가 묻고, 필요에 의해 고쳐쓰는 흔적들, 상황에 의해 자유롭게 집과 마을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그렇게 건축에 덧붙여진 이야기들의 깊이는 삶에 대한 태도의 깊이와 이어진다. 지금의 삶의 모습속에서 중첩된 마을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건축이 생성되는 것을 생각한다. 
 


						
 

 

J FORUM

 
date 2018.09
type forum
location seoul, korea
photo o.heje architecture
publication건축신문#22 – 등장하는 건축가들
remarks forum.junglim.org/archives/903
생활감이 느껴지는 풍경
과거에는 집을 통해서 생활감이 표현되었다. 밥을 만들면서 불을 피우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밥 짓는 냄새가 퍼져간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고,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하며 이웃을 만난다. 한 가정의 생활감이 집 안에서 뿐 아니라 마을로 연장되어 있었다. 근대 이후 가정의 생활감은 건축 설비 안에 흡수되어 버렸다. 덕트가 모든 냄새와 연기를 빨아들이고, 상하수도는 우물과 강가 대신에 수돗물을 공급한다. 빨래하는 곳, 물을 길어오는 곳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던 공간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마을에 조금씩 연장되어 있던 한 가정의 생활감뿐만 아니라, 마을 안의 공공적 생활감도 흡수되어 카페나 공공시설로 옮겨 갔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을 걷다보면 사람의 기미, 생활감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풍경이 있다. 마치 생활이 집 밖으로 조금 삐져나온 것 같은, 집으로부터 흘러넘쳐나온 부분들을 통해서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생활을 상상하게 하고, 마치 자신을 표현하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상상력을 느끼게 하는 풍경들을 마주하면서 인간의 생활에 요구되는 것, 인간을 즐겁게 하고 실존에 필요한 것,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만드는 자로서 무엇을 추구하고 만들것인지, 건축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어디까지,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게 된다. 
그것은 처음부터 철처하게 계획되어 사용되고, 유지되는 것과는 다른 시점의 이야기일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의 시대에서 건축이 완결적이 아닌 시간의 중층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에게 건축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 이야기는 일상에서 시작해 주변과 이웃, 나아가 도시와의 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독백이 아닌, 놓여진 환경에 자연스럽게 일부가 되면서 어떻게 새로운 건축을 만들수 있을까 생각한다. 
건축이 존재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를 해야한다. 마을에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가 설계하고 있는 건축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할수 있게 되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의 건축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한 소설가는 매일 루틴하게 마을을 산보하는데, 그 일련의 코스가 곧 글쓰기와 동일하다고 한다. 매일 아침에 집을 나서서 거치는 식당과 카페, 공원등의 산보  과정속에서 집은 하나의 장소일 뿐이다. 그에게 삶의 모든 과정은 산보, 나아가 글쓰기와 동일시되어 있는 것이다.
걸으며 만나는 마을의 풍경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채집한다. 걷고, 잠시 머무르고, 다시 걷고, 잠시 머무르고,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건이 나의 삶과 이야기에 봉합되고, 일상에서 지나쳐버리고 마는 사건도 건축의 일부가 된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야기의 주체가 되고, 또 다시 배경이 되는 것을 반복하는 풍경.
살아가는 자이자 살아감을 만들어 가는 자로서, 배경과 주체 사이를 순환하고 있는 풍경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생각한다.